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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보관

12강 시와 건축 (1)

인문학과 공학의 만남

12강 시와 건축 (1)


※ 필자의 의견과 생각 정리는 보라색 글씨로, 강의자가 강조한 내용은 굵게 표시하였습니다.

※ 이 글은 강의를 듣고 필자가 사견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따라서 본 강의 내용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시와 건축의 공통점과 차이점

상상력의 산물이며, 미적 구조물을 지향하여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선 시와 건축이 동일한 면이 있다. 차이점 역시 존재하는데, 아래의 표처럼 정리해볼 수 있겠다. 


 시

 현실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움

 정신적 가치 중시

 삶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침 

 건축

 현실의 영향을 많이 받음 

 경제적, 실용적 가치 중시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침 

 수요자의 요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렇게 다르지만, 다르기 때문에 시와 건축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건축이 시인에게 미치는 영향

① 생활적 공간


날개 없이도 그는 항상 하늘에 떠 있고

새보다도 적게 땅을 밟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아파트를 나설 때

잠시 땅을 밟을 기회가 있었으나

서너 걸음 밟기도 전에 자가용 문이 열리자

그는 고층에서 떨어진 공처럼 튀어 들어간다.

휠체어에 탄 사람처럼 그는 다리 대신 엉덩이로 다닌다.

발 대신 바퀴가 땅을 밟는다.

그의 몸무게는 고무타이어를 통해 땅으로 전달된다.

몸무게는 빠르게 구르다 먼지처럼 흩어진다.

차에서 내려 사무실로 가기 전에

잠시 땅을 밟을 시간이 있었으나

서너 걸음 떼기도 전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는 새처럼 날아들어 공중으로 솟구친다.

그는 온종일 현기증도 없이 20층의 하늘에 떠 있다.

전화와 이메일로 쉴 새 없이 지저귀느라

한 순간도 땅에 내려앉을 틈이 없다.

김기택, 「그는 새보다도 적게 땅을 밟는다」 

출처 : 김기택, 『사무원』, 창작과비평, 1999.05.

빌딩 : 현대인들이 자동차, 건물 등에서만 생활하는 것을 묘사한 시이다.


누가 원할 것인가. 이렇게 많은 이름들이 한 필지의 땅 안에서 비슷한 기억을 만들어가고 있다니. 주민등록등본을 떼러 갈 때마다 동사무소를 둘러싼 아파트 속의 낯모르는 얼굴들이 떠오른다. 베란다 앞 문짝까지 떼어내고 손님을 치르는 비좁은 환갑잔치와 TV장식장 위에 영정을 모셔놓고 차례를 지내는 제삿날이. 경조사의 기미가 느껴질 때마다 낯선 구경꾼이 되어버리는 내 어긋한 호기심을 위해 간혹 떡 접시가 건너오기도 하지만 서로의 잔치와 서로의 슬픔이 개입할 길은 없다. 함께 한 아무 기억도 없는 개입이라니. 공유되지 못한 기억은 새로운 기억을 만들 수 없다. 아무 기억도 없이 우리는 가까운 곳까지 도달해 버렸다.

이영진, 「군집」

출처 : 이영진, 『아파트 사이로 수평선을 본다』, 솔출판사, 1999.03.

아파트 : 아파트 속의 생활을 통해 삶이 획일화되어가며 나타나는 '비슷한 기억들'과 '공유되지 못한 기억'을 다루고 있다.


성윤석 -「극장에 가면」 

극장 : '인간은 모두 어떤 환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환상은 인간을 황폐화하기도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무뇌아를 낳고 보니 산모는

몸 안에 공장지대가 들어선 느낌이다.

젖을 짜면 흘러내리는 허연 폐수와

아이 배꼽에 매달린 비닐끈들.

저 굴뚝들과 나는 간통한 게 분명해!

자궁 속에 고무인형 키워온 듯

무뇌아를 낳고 산모는

머릿속에 뇌가 있는지 의심스러워

정수리 털들을 하루 종일 뽑아댄다.

최승호, 「공장지대」

출처 : 최승호, 『세속도시의 즐거움』, 세계사, 1990.04. 

도시 : 공학적 생산물들의 폐해를 비판하는 시이다.


② 상징적 공간

공간이 상징하는 바는 상당히 많다. 추억의 공간(이문재, 「우리 살던 옛집 지붕」)을  의미할 때도 있고, 성찰의 공간(백석,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각주:1])이 되기도 한다. 이뿐만 아니라 공간은 근원적인 고향(기형도 -「정거장에서의 충고」[각주:2])을 나타내거나 생태학적인 공간(이정록, 「물소리를 꿈꾸다」[각주:3])을 나타내기도 한다. 서정주의 「광화문」[각주:4]은 공간으로부터 민족정신이란 상징적인 요소를 끌어낸 시이다. 


이처럼 건축은 시인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이 글은 2013년 11월 15일에 쓴 글을 새롭게 손본 것입니다.




  1. 정한 갈매나무 [본문으로]
  2. 어쩌다가 집을 떠나왔던가 / 그곳으로 흘러가는 길은 이미 지상에 없으니 [본문으로]
  3. 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 [본문으로]
  4. 광화문은 / 차라리 한 채의 소슬한 종교(宗敎). * 여기서 광화문은 경복궁의 문이며, 조선왕조의 문이며, 민족의 정신의 문을 의미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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