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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강 시와 공학 (2)

인문학과 공학의 만남

10강 시와 공학 (2)


※ 필자의 의견과 생각 정리는 보라색 글씨로, 강의자가 강조한 내용은 굵게 표시하였습니다.

※ 이 글은 강의를 듣고 필자가 사견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따라서 본 강의 내용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현대시에 나타난 현실 인식의 양상


① 긍정적 인식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김상용, 「남으로 창을 내겠소」, 1934

현실과 갈등도 없이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이다. 일제강점기에 쓰인 시치고는 현실감이 떨어질 정도로 전원, 향토적 생활을 다룬 것이 특기할 만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바라보려는 시라 할 수 있다.


② 부정적 인식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김기림, 「바다와 나비」, 1939


근대 문명에 대한 환상을 품었으나, 그것의 실체가 이상적인 것이 아님을 알고, 조선 모더니즘에서 절망을 본 느낌을 담고 있다. 

주로 현실 대응의 시 양상은 부정적 인식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현실 인식의 양상은 다음과 같이 나누어 볼 수 있다.

1. 적극적 저항 : 이육사 -「광야」[각주:1]

2. 소극적 비판 : 김수영 -「사령」 

3. 자기 성찰 : 윤동주 - 「참회록」

4. 현실 초월 : 천상병 -「귀천」

5. 현실 도피 혹은 체념 : 신경림 -「농무」


1~3은 여전히 현실 자체에 대한 적극적 관심으로부터 나오는 태도이다.


공학이 만들어 놓은 세계는 엄연히 현실이다. 이러한 태도를 통해 공학의 세계를 투영해볼 수 있겠다. 환원하면, 시인의 시가 긍정적으로 바뀌려면 현실이 바뀌어야 하고, 그렇다면 그 현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공학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시인이 시를 쓰는 이유는 좀 더 나은 세상을 꿈꾸기 때문이다. 이를 달성하려면 '시적인 공학'이 필요하다. 


즉, 시적 공학이 필요한 이유는 공학의 생산물들이 인간의 삶(시인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시인들의 정신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며, 결국 시 자체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시의 세계가 부정적이라는 것은 공학이 만들어가는 현실 자체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내면 형성을 못 시키는 반증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낡은 시대와 서둘러 작별하라

시,인,은,죽,었,다

안현미, 「짜가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니체의 '짜라투스투라'에서 '신은 죽었다'라는 구절을 '시인은 죽었다'라고 표현하는 것이나 '시인의 영혼을 처형하라!'는 표현 등 시인이 필요 없어짐을 표현한 시이다.


이 강의에서는 '공학이 시를 참고하면서 발전해나가야 즉, 시적인 공학이 되어야 더 나은 사회를 구성할 수 있다. 시는 이 세계가 어떤지를 드러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시는 공학에 자신들이 말하는 '더 나은 길'을 제시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문제 제기에 그치고 마는 무책임한 역할만을 완수할 뿐인가? 일단 이러한 논의는 남은 강의인 '시와 공학 (3)'까지 들어본 후 생각해도 늦지 않을 듯싶다.


이 글은 2013년 11월 13일에 쓴 글을 새롭게 손본 것입니다.




  1. 일제의 검열 등으로 인하여 생각보다 많은 시가 있지 않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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