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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보관

11강 시와 공학 (3)

인문학과 공학의 만남

11강 시와 공학 (3)


※ 필자의 의견과 생각 정리는 보라색 글씨로, 강의자가 강조한 내용은 굵게 표시하였습니다.

※ 이 글은 강의를 듣고 필자가 사견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따라서 본 강의 내용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시적인 공학을 만들기 위한 방법 즉, 시에서 창의성을 획득하는 방법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① 사소한 것에 관심 두기


가벼운 교통 사고로 세 번 겪고 난 뒤 나는 겁쟁이가 되었습니다. 시속 80킬로만 가까와져도 앞 좌석의 등받이를 움켜쥐고 언제 팬티를 갈아 입었는지 어떤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재빨리 눈동자를 굴립니다. 


산 者도 아닌 죽은 者의 죽고 난 뒤의 부끄러움, 죽고 난 뒤에 팬티가 깨끗한 지 아닌 지에 왜 신경이 쓰이는지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신경이 쓰이는지 정말 우습기만 합니다. 세상이 우스운 일로 가득하니 그것이라고 아니 우스운 이유가 없기는 하지만.

오규원, 「죽고 난 뒤의 팬티 

 출처 : 오규원, 『이 땅에 씌어지는 서정시』, 문학과지성사, 1981.11.

죽고 난 뒤의 부끄러움보다 현재의 삶에 충실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남들이 관심 두지 않은 소재를 형상화, 의미화하여 좋은 시를 탄생시켰는데, 공학도 이를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것이 항상 유익한 것만은 아니다.


② 입장 바꾸어 생각하기


나 서른다섯 될 때까지

애기똥풀 모르고 살았지요

해마다 어김없이 봄날 돌아올 때마다

그들은 내 얼굴 쳐다보았을 텐데요


코딱지 같으 어여쁜 꽃

다닥다닥 달고 있는 애기똥풀

얼마나 서운했을까요


애기똥풀도 모르는 것이 저기 걸어간다고

저런 것들이 인간의 마을에서 시를 쓴다고

안도현, 「애기똥풀」

 출처 : 안도현, 『그리운 여우』, 창작과비평사, 1997.07.

애기똥풀 입장에서 시인의 삶을 보며 반성하는 시이다. 대상의 이름을 알고 인식하는 것과 모르고 인식하는 것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자기 대화 또는 자신과 동일한 규칙을 공유하는 사람과의 대화를 대화라고 부르지 않는다. 대화는 언어 게임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존재한다. 그리고 타자 역시 언어 게임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이어야만 한다.

가라타니 고진, 『탐구 1』, 새물결, 1998.12.


가라타니 고진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대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에 관한 이야기 중 규칙이, 생각의 방식이 서로 다른 사람끼리의 대화가 진정한 대화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③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하기

이 개념은 러시아 현실주의자 빅토르 시클롭스키[각주:1]가 제안한 방법이다.


햇살 가득한 대낮 

지금 나하고 하고 싶어? 

네가 물었을 때 

꽃처럼 피어난 

나의 문자 

"응" 


동그란 해로 너 내 위에 떠 있고 

동그란 달로 나 네 아래 떠 있는 

이 눈부신 언어의 체위 


오직 심장으로 

나란히 당도한 

신의 방 


너와 내가 만든 

아름다운 완성 


해와 달 

지평선에 함께 떠 있는 


땅 위에 

제일 평화롭고 

뜨거운 대답 

"응" 

문정희, 「응」 

출처 : 문정희, 『나는 문이다』, 뿔, 2007.06.


익숙한 대답의 말인 '응'을 '꽃처럼 피어난 나의 문자'로 표현한 시이다. 


④ 낯선 것들을 자연스럽게 연결하기


열무 삼십 단을 이고희망의 문학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한 빗소리

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기형도, 「엄마 걱정」

출처 :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사, 1989.05.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배춧잎같은 발소리'


시 전체적으로 식물의 이미지와 잘 연결되어있어서 위의 표현들이 전혀 어색하지 않도록 쓰였다. 낯선 것들을 자연스럽게 결합하는 것은 공학의 역사와도 일치한다.


⑤ 자기에게 솔직하기

자기다움, Origin, 자신의 고유성을 드러내려면 자기 성찰을 먼저 해야 하고, 이는 곧 세계의 성찰까지 이어지며 점차 확대되어 간다.


김수영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며」

큰 것(왕궁)에는 분개못하고,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였다. 역사적, 정치적 현실(월남파병, 언론자유)에 대해서는 매우 비겁하고 옹졸하면서 야경꾼들만 증오하는 자신을 반성하며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하고 싶다는 바람을 솔직히 말한다.


시적인 공학을 통한 일상생활의 혁명

새로운 시적 공학이 필요한 이유는 공학의 생산물들이 인간의 삶, 시인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시인들의 정신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며, 결국 시 자체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시의 세계가 부정적이라는 것은 공학이 만들어가는 현실 자체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내면 형성을 못 시키는 반증이기에 시적인 공학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참고 : 시와 공학 (2)


우리는 문명을 예찬하거나 (최남선, 「경부 철도 노래」) 비판할 수도 (최승호, 「타워 크레인 아래서」) 있지만, 시적인 공학을 통해 일상을 재구성할 수도 있다. 대표적으로 마르셀 뒤상의 '샘'이란 작품을 예로 들 수 있겠다. 


또한, 빗물박사 한무영 교수는 수세변기의 9가지 죄를 물으며, 친환경 변기의 개발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이런 생각이야말로 시적인 공학에서 창출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참고로 읽어볼 만한 자료를 링크[각주:2] 걸어 놓겠다.


이 글은 2013년 11월 14일에 쓴 글을 새롭게 손본 것입니다.




  1. Viktor Borisovich Shklovski [본문으로]
  2. 김창덕, "[O2/Life]침대보다 더 과학적인 변기, 예술 소재-환경 해결사로 뜨다", 동아사이언스, 2012.06.1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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