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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보관

선천적 행동과 학습된 행동, 로렌츠와 틴베르헌의 실험으로부터

이 글은 2011년 09월 27일에 썼던 글을 수정, 보완한 글입니다.

 

콘라트 로렌츠, 니콜라스 틴베르헌, 이 둘은 동물행동학이라는 학문을 확립하는데 수많은 연구와 업적을 남긴 대표적인 학자들이다. 로렌츠와 틴베르헌이 특히 주목한 부분은 본능과 학습이었는데, 이 둘은 거위와 큰가시고기의 실험을 통해 본능이 학습으로 만들어진다는 당시의 통념에 새로운 시선을 부여했다. 이들은 본능과 학습에 대해 무슨 실험을 해서 어떤 결과를 얻었는가? 그리고 본능과 학습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이 글에선 이 두 개의 논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자리를 함께하고 있는 로렌츠(왼)와 틴베르헌(오)

This imgae is from en.wikipedia.org

 

본능과 학습이란 무엇인가?

본능은 ‘선천적(innate) 행동’이라 말할 수 있다. 이 선천적 행동은 생득적(生得的)이다. 다시 말해,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행동이다. 뻐꾸기 새끼가 부화하자마자 주위의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 먹이의 경쟁자를 제거하는 행위는 대표적인 선천적 행동이다.

 

그렇다면 본능은 아주 어린 시기에만 발현하는 행동일까? 그렇지는 않다. 이 생각은 어린 시기야말로 학습이 전혀 되지 않은 시기, 다시 말해 본능을 관찰하기 적절한 시기라는 관념 때문에 발생한 오류이다. 틴베르헌의 실험을 한번 살펴보자. 

틴베르헌은 큰가시고기 수컷이 번식기가 되면 아랫배가 빨갛게 된다는 점에서 착안하여 이를 가지고 하나의 실험을 시작했다. 아랫배를 빨갛게 칠한 나무 모형을 큰가시고기의 영역에 놔둔 것이다. 이를 본 큰가시고기는 이 또 다른 수컷 ‘경쟁자’를 맹렬하게 공격했다. 물고기와 닮지 않은 물체임에도 붉은색만 보면 광분하는 것을 알아낸 틴베르헌은 본능이 반드시 학습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냈다. 그는 본능을 발육에 따라 변화하는 잠재적 프로그램으로 보았던 것이다.

 

반면 ‘학습된 행동’은 시행착오를 통해 반복된 자극으로 학습되는 행동을 말한다. 동물의 대표적인 학습 형태는 보상과 자극에 의한 학습인 시행착오 학습(trial and error learning)이다. 이는 두꺼비 먹이 실험과 고양이 전기 실험에서 살펴볼 수 있다. 

벌을 처음 보는 두꺼비에게 벌을 주면 두꺼비는 이를 먹이로 인식하고 덥석 입에 넣으려다 침에 쏘여 고통받는다. 이런 ‘경험’을 한 두꺼비는 벌, 심지어 벌과 닮았지만 침을 가지지 않은 파리매를 보더라도 가까이하지 않으려는 것을 볼 수 있다. 고양이 자극 실험도 주목할 만하다. 노란색 바닥에는 전기를 흘려놓고 다른 색 바닥에는 전기를 흘리지 않는 공간에서 생활했던 고양이는 그 공간에서 벗어난 후에도 노란색 바닥에는 다시 가지 않으려 한다.

 

이 시행착오 학습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인 조건화 작동(operant conditioning)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 조건화 작동은 어떤 행동 뒤에 보상이 올 것인지 징계가 올 것인지를 학습하는 행위를 말한다. 

어느 한 방에 눌렀을 때 먹이가 나오는 레버를 하나 만들어두면, 침팬지는 레버와 먹이의 상관관계를 깨닫고 그것을 마구 누르기 시작한다. 심리학자인 스키너는 이 조건화 작동의 기본 원리인 ‘보상과 자극’만 있다면 비둘기에게 탁구를 가르칠 수도 있다고 장담했다.

 

정리해보자면, 선천적 행동과 학습된 행동은 ‘경험’의 유무로 나눌 수 있다. 이전의 경험이 없어도 수행될 수 있는 행동은 선천적, 그리고 경험에 근거한 행동의 변화를 나타내는 것은 학습된 행동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경험이 이 둘을 나누는 절대적인 척도가 될 수 있을까?

 

선천적 행동과 학습된 행동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을까?

1900년대의 학자, 볼프강 쾰러(Wolfgang Kohler)는 어떤 훈련도 받지 않은 침팬지가 사는 우리, 그곳의 가장 높은 곳에 바나나를 걸어두었다. 그 침팬지는 주위의 상자를 쌓아 그것을 밟고 올라가 바나나를 취했다. 우리가 ‘지적이다’라고 부를만한 이 행동은 우리가 지적이지 않다고 여기는 동물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는데, 로버트 엡스타인(Robert Epstein)의 비둘기 학습실험을 이 예로 들 수 있겠다. 그는 우선 비둘기 몇 마리를 선별하여 날개를 자른 후, 두 가지 과제를 제시했다. 하나는 작은 상자를 바닥에서 미는 것이고, 또 하나는 상자를 밟고 올라가 천장에 달아놓은 플라스틱 바나나를 쪼는 것이다. 이후 과제를 마친 비둘기를 바나나와 상자가 서로 떨어진 실험공간으로 옮겨놓자, 처음에 어리둥절하던 비둘기는 앞의 침팬지처럼 바나나 아래로 상자를 민 후 그 위로 올라가 바나나를 쪼았다. 

 

This imgae is from Graham Davey's Ecological Learning Theory (1989)

 

즉, 동물은 갑작스러운 문제를 시행착오 없이 해결할 수 있다. 이를 통찰학습(insight learning)이라 부른다. 이 통찰학습이 나타내는 바는 선천적 행동과 학습된 행동 간에 뚜렷한 경계는 없다는 것이다.

 

서로 영향을 주는 본능과 학습

시골에 사는 사람은 밤마다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에 습관화되어, 점차 이 소리에 무감각해진다. 이를 습관화(habituation)라고 한다. 반복되는 자극에 대해선 반응이 감소하는 것이다. 이는 로렌츠와 틴베르헌이 한 연(kite) 실험에서 찾아볼 수 있다.

 

 

       

The picture on the left is from Pixabay.com, by 258817

The picture on the right is from Pixabay.com, by Rupesh

 

 

 

왼쪽으로 움직이면 기러기와 유사하고, 오른쪽으로 움직이면 매와 유사한 위 모형은 로렌츠와 틴베르헌이 실험에 사용한 것이다. 갓 태어난 병아리들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건 그들 머리 위로 움직일 때 웅크리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기러기가 해가 없다는 학습(경험)이 이루어지면서, 이 연이 왼쪽으로 움직일 땐 새끼들은 웅크리지 않는 습관이 형성된다. 즉, 학습은 선천적 반응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또한, 학습 역시 본능에 압박당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각인(imprinting)이다. 이 각인은 동물의 특정 발달 기간에만 볼 수 있는 특별한 학습이다. 예컨대 기러기는 부화한 후 특정 시기 동안 가장 많이 마주치는 동물을 어미 새라고 각인한다. 이 특정 시기를 ‘민감기’라 한다. 이 민감기에 ‘결정되는’ 어미 새는 학습으로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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