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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강 스토리텔링과 공학 (2) 完

인문학과 공학의 만남

17강 스토리텔링과 공학 (2)


※ 필자의 의견과 생각 정리는 보라색 글씨로, 강의자가 강조한 내용은 굵게 표시하였습니다.

※ 이 글은 강의를 듣고 필자가 사견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따라서 본 강의 내용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공학도를 위한 대학 기초 소양 교육의 관점에서 본 인문학의 필요성 마지막 강의


인문학은 공학도에게 왜 필요한가?

기술 혁신으로의 '기술 돌파'는 이제 어렵다. 융합(Fusion)만이 기술 혁신을 이룰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융복합화는 이미 글로벌 IT 업계에서는 미래의 흥망을 가르는 핵심 요소로 부상했다. 기술 기업의 대표 주자격인 구글은 올해 채용 대상 6000명 중 5000명을 인문학 전공자로 채용하며 연구 개발의 융복합화를 추진하고 있고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들도 각종 제품 디자인과 제품 개발 때 인문학의 상상력을 접목하는 방안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황창규 지식경제부 R&D 기획단장은 "융복합 산업은 미래 먹을거리 창출의 최대 보고"라며 "더 이상 단일 제품의 경쟁력만으로는 살아남기 힘들며 융복합 산업에 경제 국운(國運)을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각주:1]


이종 학문의 복합상태는 두 사람이 협력하는 단계에서 한 사람이 융합하는 단계로 흘러왔다. 즉, 현대 사회에서 요구되는 인재형은 창조하고 창출하는 사람인 것이다. 이 역할을 공학도가 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바로 공학과 인문학의 사고는 선순환적 관계로 묶여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상상하는 것은 인문학으로도, 공학을 통한 과학적 실현으로도 나타난다. 인문학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것은 과학적 실재화가 될 가능성이 있고,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인간은 인문학적 상상을 할 수도 있다. 공학도에게 이처럼 인문학은 이질적 대상이 아니며, 소통할 수 있는 학문이다. 앞선 강의처럼 문학의 서사와 시가 공학과 소통하며 같은 호흡을 하고 있었던 것도 하나의 증거라고 하겠다. 이처럼 공학은 인문학적 요소도 포함하고 있으므로 이질적인 과학과 인문학을 이어줄 수 있기도 하다.


과학과 공학 그리고 인문학

1959년에 열린 C.P.Snow의 '두 문화와 과학혁명' 강연, 이곳에서 논의되었던 주제는 바로 문명이 과학과 인문학이라는 두 문화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으므로, 이것이 서구 문명의 앞날을 위협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공학은 언제부터인가 스스로 '과학'의 일종이라고 간주하는 경향을 보여왔는데, 공학은 사실 과학 지식을 현실 문제로 응용한 '응용 학문'이다. 따라서 기술을 지나치게 과학에 가까운 것으로 취급하면서 스스로 공학의 범위를 좁히고 인간적인 특성과는 거리가 먼 특수한 합리적 전문지식의 세계로 자신을 소외해서는 안 된다. 공학은 단지 과학과 가깝거나 그것의 일종으로 동일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과학과 인문학을 매개하면서 그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혼성적 문화의 성격을 갖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학은 과거의 두 문화 체제에서 과학 편으로 쏠려 있는 자신의 위치와 정체성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고가 필요하며, 비인간 사물뿐 아니라 다양한 인간들의 행위에 대하여서도 풍부한 이해를 갖출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에 공학자들은 기술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도덕적 측면에 관하여 인문 사회과학자들과 적극적인 대화 및 소통에 나서야 한다. 공학자들은 기술의 최종 사용자인 일반 대중의 의견을 경청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각주:2]


공학은 두 문화로 서로 쪼개진 과학과 인문학을 이어주는 튼튼하고 아름다운 다리가 되어야 한다.[각주:3]


이런 이유에 덧붙여, 사회 역시 공학의 대중화로 특정한 담화 공동체를 벗어나 대화의 장이 넓어지게 되었다. 이에 자기 표현력이 뛰어난 공학도가 요구되게 된 것이다. 인문학자만이 글 쓰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과학 칼럼은 누가 써야 하는가? 공학도 역시 직장 생활에서 공학적 사실만을 다루지는 않는다. 따라서 공학도가 공학적 지식을 발현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소양이 함께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인문학과 공학의 융합
인문학과 공학의 융합은 인문학적 기법을 추가하는 것이 아닌, 인문학 작품 속에 드러난 사람을 더 잘 알고자 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인문학에서 사람을 어떻게 기술하는지, 사람을 어떻게 분석하고 예측하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즉, 공학과 인문학은 공히 '인간'에게로 귀착된다.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 베이 호텔. 가전 분야 세계 최대 전시회인 CES(Consumer Electronics Show)의 공식 개막을 하루 앞두고 주요 기업들의 발표회가 열렸다. 수년 전부터 CES에선 삼성전자·LG전자 등 한국 업체들의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올해도 두 회사의 다양한 신기술들이 관심을 모았다.

이날 삼성전자는 발표회에서 신형 모바일 프로세서 ‘엑시노스 5 옥타’와 휘는 디스플레이 등 첨단기술을 선보였다. 하지만 올해 시장에 나올 제품 중에서 큰 관심을 끈 것은 삼성전자의 스마트TV 신제품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관심 대상은 제품의 하드웨어가 아니었다. ‘어떻게’ TV를 이용할 것이냐 하는 ‘개념’이었다. 어떤 기술로 제품을 만들었느냐보다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따지는 개념인 사용자 인터페이스(UI·User Interface) 또는 사용자 경험(UX·User Experience)이 본격적으로 적용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람이 TV를 켰을 때 지금처럼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며 프로그램을 찾을 필요가 없다. 그냥 TV에 대고 ‘뭐 볼 만한 것 없나?’라고 말하면 목소리를 알아들은 TV가 가장 적절한 프로그램을 추천하는 식이다. TV를 켠 사용자가 누구인지 TV는 이미 얼굴 인식기능을 통해 알고 있다. 그래서 평소 어떤 프로그램을 즐겨 봤는지, 지금 시간대가 어떤지 등을 감안해 개인화(personalized)된 맞춤형 추천을 한다. 지상파뿐 아니라 케이블TV와 유튜브, 개인이 저장한 동영상·사진, 다양한 TV 앱 등도 쉽게 검색할 수 있다. 검색과 실행은 말이나 리모컨 외에 동작(제스처)으로도 가능하다. 프로그램 목록이 나오거나, 스마트폰이나 스마트패드처럼 빽빽한 메뉴 아이콘이 깔리는 기존 방식보다 훨씬 빠르고 직관적인 것은 물론이다.[각주:4]


연구 내용에 대해 그는 “다양한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기술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기술과 사용자와의 관계가 어떻게 만들어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세상이 올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융합은 단순하게 서로 다른 분야를 붙여 놓는 게 아니라 무엇을 중심에 두느냐가 핵심이라는 점도 배웠다”고 말했다. ‘중심’에 둘 것은 당연히 기술이 아니라 사용자, 즉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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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례로 3D는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빠른 속도로 주변 상황을 일별해야 하는 인간의 본성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공학만을 추구하게 되면 이러한 상황에 부딪히게 된다.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철학, 심리학, 사회학이 기술 분야와 꼭 함께 가야 하는 이유다.


인문학과 공학의 벽을 허물려면 대상을 공유[각주:5]하거나, 이론을 공유[각주:6]하거나, 문제를 공유하는 식으로 모색해볼 수 있다.[각주:7]


이 글은 2013년 11월 18일에 쓴 글을 새롭게 손본 것입니다.




  1. 조형래, "合 잡스, 극과 극을 하나로 융합시키다", ChosunBiz, 2011.10.08. [본문으로]
  2. 김환석. "과학과 인문학을 잇는 공학교육". 『공학교육』, 2010, 17(2), pp.19-21. [본문으로]
  3. 김환석. "과학과 인문학을 잇는 공학교육". 『공학교육』, 2010, 17(2), pp.19-21. [본문으로]
  4. 중앙SUNDAY, "얼굴·음성·스타일 인식해 TV채널 추천 척척", 중앙SUNDAY, 2013.01.20. [본문으로]
  5. 뇌과학, 인지과학 등 [본문으로]
  6. 디지털 스토리텔링 [본문으로]
  7. 채영희, "인문학과 공학 융합 교육의 방법 모색", 『공학교육연구』, 2012, 19(1), pp. 18-22.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