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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공학/환경철학 및 사건

1991년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 1991 Nakdong River phenol contamination incident


"와, 페놀 우유다! 꿀꺽꿀꺽, (어눌한 말투로) 한 잔만 더 주세요."

- 유재석, 1991년 KBS 제1회 대학개그제에서 낙동강 페놀 사건을 풍자하며


개요

1991년 경북 구미시 구미공업단지, 두산그룹 산하 회사인 두산전자에서 사용하는 다량의 페놀 원액이 대구, 부산, 마산을 비롯한 영남지역의 식수원인 낙동강으로 유출된 사건이다. 녹색연합에서 1999년도에 선정한 “50년대 이후 발생한 대한민국 환경 10대 사건”에서 1위로 꼽혔을 만큼 대한민국 역대 최악의 환경 사건이다.


1차 오염

1차 유출은 3월 14일,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6시까지 이루어졌다. 페놀 원액 저장 탱크에서 페놀수지 생산라인으로 연결된 파이프가 파열되어 페놀 30톤이 옥계천을 거쳐 대구 지역 상수원인 다사 취수장으로 유입된 것이다. 이어지는 염소처리공정에 페놀이 반응하여 클로로페놀로 변하면서 악취를 유발하였다.


사건 당시 수돗물에서 냄새가 난다는 대구 시민들의 신고를 받았지만, 취수장에서는 원인의 규명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냄새를 덮기 위해 오히려 다량의 염소 소독제를 더 투입하여 상황을 악화시켰다. 이에 페놀은 대구광역시뿐만 아니라 낙동강을 타고 흘러서 하류의 밀양, 함안, 칠서, 부산광역시까지, 전 영남지역을 오염시켰다. 이에 관련 정수장은 염소 소독을 중단하고 활성탄, 오존, 이산화염소로 수처리 시스템을 변경하였다. 


조사결과 두산전자는 90년 10월부터 페놀이 다량 함유된 악성 폐수 325톤을 옥계천에 무단으로 방류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 또한, 이 사건으로 대구 환경처 직원 7명, 두산전자 관계자 6명, 총 13명이 구속되었으며, 관계 공무원 11명이 징계를 받았다. 두산전자는 30일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으나, 고의성이 없었다는 점, 그리고 수출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만으로 20일 만에 조업 재개가 허용되었다.


2차 오염

2차 유출은 두산전자의 조업 재개가 허용된 지 보름인 4월 22일 오후 12시 5분에 발생하였다. 이번엔 페놀 탱크 송출 파이프의 이음새 부분이 파열되면서 페놀 원액 2톤이 낙동강에 다시 유입되었다.


임부의 유산사건과 정부의 안일한 대책으로 인해 국민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으며, 이 사건의 결과로 박용곤(朴容昆) 두산그룹 회장 사퇴, 허남훈 환경처 장관, 한수생 차관이 경질되었고, 두산전자는 64일의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다. 


대구시민들은 두산 측에 물질적, 정신적 피해 보상금 170억 100만 원(1만 3,475건)을 청구하였으나, 두산은 그중 10억 1,800만 원(1만 1,036건)만 배상하고, 임산부의 정신적 피해와 같은 확인이 쉽게 되지 않은 피해에는 보상하지 않았다.


사건 이후 

수돗물에 대한 인식이 급격히 나빠졌으며, 이런 수돗물 불신으로 생수 시장이 활성화되었다. 또한, 고의로 유해물질을 배출한 경우 최고 무기징역까지 처할 수 있게 하는 <환경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되었으며,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의 발족도 이때 이루어진 것이다[각주:1].


환경처(環境處)가 환경부로 부상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건 중 하나라고 보고 있다. 즉, 이 사건은 당시 개발논리가 어느 가치보다 우위에 서 있던 사회에서 환경문제는 인류의 생존과 밀접하기에 결코 등한시할 수 없다는 경종을 크게 울린 사건이라 볼 수 있다.




  1. 하지만 경제성장의 논리에 밀려 제대로 시행되지는 못하였다. [본문으로]